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책 리뷰

(책 리뷰) 숨 < EXHALATION >

by 청룡과유니콘 2021. 1. 19.

  작가 테드 창의 글을 읽으면 마치 누군가의 은밀한 편지를 받은 듯한 느낌이 든다. 그의 세계에 초대된 특별한 존재가 된 듯하다. 가히 SF의 거장이라 할 만큼 그의 단편집 <숨>의 모든 세계는 새로운 형태의 깊은 몰입감을 준다. 

 

   총 9개의 각기 다른 세계로 구성된 <숨>은 과학 철학적 문제들(ex. 자유의지, 고유함, 불가역성 등)을 주제로 한다. 그의 글은 단순히 인간의 한계를 드러냄에서 멈추지 않고, 그럼에도 우리가 너무 좌절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는 세심한 배려를 가지고 있다.

 

   <숨>의 단편들 중 가장 와닿았던 3가지를 골라보았다.  

 

1.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체주기

 

   가상현실과 가까워진 어느 미래, 인간은 디지털 세계의 아바타를 통해 친구를 만들고 디지언트라 불리는 애완동물을 키운다.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디지언트들은 실제 의식을 가진 디지털 세계의 동물이다. 이 소설에서는 인간과 디지언트들의 애착관계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해 묻는다.

 

   소설 속의 사람들은 디지언트를 키우다가 그 한계를 느끼고 떠난다. 20년 가까이 디지언트들을 키운 주인공들은 그 이상의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, 그들 역시 디지언트를 통해 그들에게 채워져 있지 않던 사랑을 메꿀 뿐이다. 가상의 현실에서 애착관계의 대체품을 찾지만 너무 쉽게 포기할 수 있는 탓에 다시 고립감의 구심구로 되돌아오기 쉽다.

 

   인간은 결국 무엇인가와 소통하며 고립감에서 벗어나려고 한다. 그것은 시기에 따라 우정-사랑-부/모정 등의 애착 형태를 띈다. 소설 속의 디지언트들 역시 새로운 형태의 애착관계를 제공할 뿐이다. 하지만, 결국에 가장 허무감을 느끼지 않은 형태로 가장 오랜 시간 인간의 고독감을 망각시켜 줄 형태는 그 자신의 후손을 통해서라는 사실을 진화론에 근거한 인간의 생식, 번식 본능이 방증한다고 생각한다.


Point 2. 옴팔로스

 

   그리스어로 '배꼽'을 뜻하는 옴팔로스는 태초의 무언가를 의미한다. 이 소설에서는 태초의 인간, 태초의 생물들을 연구하던 한 고고학자가 인류가 창조주의 유일무이한 창조물이 아닌 진정한 무언가를 위한 실험적 피조물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. 

 

  인류는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며, 신이 인류에 남겨준 불완전한 것들에 대한 의문점들을 해소하며 두렵고 괴로워한다. 누군가에게 중요하고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은 인류의 마음, 그리고 그 믿음에 지탱하여 살아온 긴 시간들이기 진실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.

 

   필연은 우연보다 더 강한 믿음과 의지를 준다. 어떠한 경우 필연이 우연이 되는 순간 많은 것들이 힘없이 무너져 내린다. 인간 개개인 역시 무엇에 지탱하며 살아가는 삶인지는 달라도, 작은 회의감과 의구심에 흔들린 결과는 같을 것이다. 


   '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, 무슨 의미이지'라는 질문은 인간을 일순간 무기력하게 만드는 신호탄이다. 그렇다고 무작정 이 생각을 경계만 해야 할지, 계속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지에 대한 답은 각 개개인의 마음속에서 그 혼자만이 내릴 수 있다. 상대 내면의 굳건함을 모른 채로 누군가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일은 무책임한 폭력이다. 결국 혼자 결론을 지어야 하기에 고독한 싸움은 계속된다.

Point 3.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

 

   이 단편은 반드시 '선택'이라는 것을 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필연성에 대한 이야기이다. 모든 선택에 대한 결과를 알 수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, 우리는 더 행복해질 것인가.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는 주제이다. 하지만, 이 단편에서는 평행세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미래를 알 수 있지만 과거를 바꿀 수는 없으며, 다른 미래 속을 사는 것 역시 평행세계의 나일뿐이다. 말 그대로 미래를 아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는 것이다.  


   만약 과거에 다른 선택을 했다면 벌어졌을 일들의 결과에 대해 알게 된다면, 당시의 선택의 결과가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다는 큰 안도감을 얻을 수도 혹은 동일한 이유로 큰 불행을 얻을 수 있다. 공평한 무게의 행복과 불행을 담고 있는 판도라의 상자일 뿐이다.


   과거의 후회를 앉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단편을 통해 테드 창은 작은 위로를 전한다. 어떤 사람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작은 행동과 사고가 축적된 결과이기에, 한 순간에 결정했다 생각되는 많은 결정은 필연적이 경우가 많다. 그렇기에 누군가의 삶에 타인의 작은 행동이 미치는 영향은 미비함으로, 당신이 누군가에게 갖는 어떠한  죄책감을 조금은 내려놓아도 좋다.

 

 

# 추천

 이틀 동안 단숨에 읽어 내려갈 만큼 재미있고 높은 몰입도를 선사하는 책이다. 현실의 답답함과 우울함에서 벗어나 (언젠가 우리가 직접 혹은 우리의 후손이 맞이할 법한) 미래 세계를 경험해 볼 수 있는 특별한 시간들로 마음과 정신을 부드럽게 할 수 있었다.    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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